역사적으로 기독교 초기, 신앙의 기초가 이루어졌던 중요한 중심지였고
구약,신약 성경 모두에서 중요한 사건들이 펼쳐진 곳으로, 성경과 기독교 역사에 깊이 연관된 지역입니다.
기독교의 뿌리와 역사를 간직한 땅이며, 기독교 신앙과 깊게 관련된 많은 유적지가 현재에도 남아 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기독교를 믿지 않는 나라가 된 곳...어디일까요?
그 곳은 바로 지금은 국민의 98% 이상의 절대다수가 이슬람교를 믿는 이슬람 국가가 되어버린
터키(튀르키예)입니다.
우리가 성경 속에서 아주 친밀하게 들었고 보았던 많은 장소와 인물들, 사건의 중심지였던 이름들이
지금 현재의 터키(튀르키예) 지역이었다는 걸 알게 된 다면 놀라실 분들이 많으실 것 같아요.
그렇다면 터키(튀르키예) 는 어떻게 성경 속에서 중요한 장소가 되었고
무슨이유로 현재는 이슬람 국가가 되었을까요?
성경속의 터키(튀르키예)
터키(튀르키예) 는 성경과 깊은 연관을 가진 지역으로,
구약과 신약의 중요한 사건들이 이곳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구약시대의 아브라함, 예언자들, 노아의 방주가 안착했다고 전해지는 활동지였으며,
신약에서는 초대 교회의 중심지로 성장했습니다.
특히, 신약성경에서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 그리고 사도들의 발자취를 찾을 수 있으며
사도 바오로의 활동과 서신, 요한묵시록의 기록은 모두 소아시아( 터키<튀르키예> 의 옛 이름)와 관련이 깊습니다.
▒ 구약성경과 터키(튀르키예)
구약성경에서 터키(튀르키예) 는 당시 소아시아 또는 아나톨리아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주요 사건과 장소로 등장합니다.
1. 노아의 방주와 아라랏산
노아의 방주가 멈춘 곳으로 알려진 아라랏산은 오늘날 터키(튀르키예) 동부에 위치합니다(창세기 8:4).
이 지역은 인류 역사가 새로운 시작을 맞이한 곳으로 성경에 묘사됩니다.
2. 아브라함의 발자취 : '우르' 와 '하란'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으로 가기 전, 그의 고향 우르(현재의 터키 남동부 인근)가 언급됩니다(창세기 11:31).
하란은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이 잠시 머물렀던 곳으로, 오늘날 터키(튀르키예) 내에 존재합니다.
3. 히타이트 족속
구약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히타이트는
고대 아나톨리아(지금의 터키(튀르키예) 지역)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민족입니다(열왕기상 10:29).
이들은 가나안 땅과 연관되어 하느님 약속의 땅을 구성하는 주요 민족 중 하나였습니다.
▒ 신약성경과 터키(튀르키예)
신약에서는 터키(튀르키예) 지역이 기독교 초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예수님의 제자들과 초기 교회 공동체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1. 예수님과 터키(튀르키예) 의 연결성
예수님 자신이 터키(튀르키예) 를 직접 방문한 적은 없지만,
그의 삶과 가르침은 이 지역에서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사도 중 많은 이들이 터키(튀르키예)에서 선교 활동을 펼쳤습니다.
2. 예수님의 12 제자들과 사도 바오로
예수님의 열두 사도 중 많은 이들이 터키(튀르키예)에서 선교 활동을 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베드로는 터키(튀르키예)의 소아시아 지역을 대상으로 편지를 보냈습니다(베드로 전서,후서).
사도 바오로( 바오로 서간), 베드로(베드로 전,후서), 요한(요한묵시록) 등은
모두 소아시아( 터키<튀르키예>의 옛 이름)에서 활동했습니다.
에페소와 같은 도시는 초대 교회의 중심지로 번성했으며,
신약성경의 중요한 편지들이 이곳에서 작성되었습니다.
3. 사도 바오로의 선교 여행지
사도 바오로는 그의 세 차례에 걸친 선교 여행 중 대부분을 오늘날의 터키(튀르키예) 지역에서 수행했습니다.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등은
신약의 서신서가 기록된 주요 도시들입니다.
터키(튀르키예)의 '안티오키아'는 사도 바오로와 사도 바르나바가 선교를 시작한 초대 교회의 중심지였습니다
(사도행전 13:1-3).
4. 요한묵시록과 일곱 교회
사도 요한이 기록한 요한묵시록에 등장하는
일곱 교회( 에페소,스미르나, 페르가몬, 티아티라,사르디스, 필라델피아, 라오디케이아 )는
모두 터키(튀르키예) 에 위치하고 있습니다(요한계시록 1:11).
4. 성모 마리아님의 거주지
특히, 에페소는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 하신 이후,
사도 요한이 성모 마리아님을 모시고 거주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요한복음 19:26-27).
5. 기독교 유적
◎ 성소피아 대성당(현재 아야소피아 모스크 /이슬람 사원) 건축물은 비잔티움 제국의 유산
◎ 초기 기독교 동굴 교회들→고대 도시 에페소 , 카파도키아 지역
◎ 흑해 연안의 수메라 수도원→ 트라브존 지역
기독교 역사속의 너무나 중요한 역할을 했던 " 터키(튀르키예) "
▒ 초기 기독교 교회의 발상지
● 터키(튀르키예) 는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지역으로,
성경의 많은 내용과 관련된 장소와 사건이 존재
● 4세기경 콘스탄티노플(현재 터키의 이스탄불)은
고대 로마 제국 동부의 주요 지역으로서 비잔티움 제국(동로마 제국)의 수도로,
동방 기독교의 중심지
● 니케아 공의회(오늘날의 이즈니크)에서 기독교의 주요 교리가 확립되어 기독교의 중심지
● 로마 제국 4세기 초(313년)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이 지역은 기독교 신앙의 확산과 성경의 형성에 큰 역할을 함
● 강력한 기독교 문화권. 많은 교회, 성지, 수도원이 건축되고 발전.
터키(튀르키예)가 기독교 문화의 중심지에서 이슬람교 국가로 변모하게 된 과정
터키(튀르키예)가 과거 기독교 문화의 중심지에서 이슬람교 국가로 변모하게 된 과정은
정치적, 군사적, 종교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이 과정은 천 년 이상에 걸쳐 일어났고,
현재 이슬람교가 99%를 차지하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 아랍인의 이슬람교 확산
이슬람교의 발상지는 현재의 사우디아라비아인 메카와 메디나 지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슬람교는 7세기 초반 아라비아반도의 **메카(Makkah)**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메카는 오늘날 사우디아라비아에 위치한 도시로,
당시에는 아라비아반도의 중요한 상업 중심지이자 종교적 성지였습니다.
이슬람의 창시자인 예언자 무함마드(Muhammad)는 610년에 메카에서 첫 계시를 받았고,
이를 통해 이슬람교가 시작되었습니다.
무함마드는 메카에서 점차 신앙을 전파했으나
초기에는 박해를 받아 메디나(Madinah)로 이주(622년, 히즈라).
이후 메디나에서 이슬람 공동체를 세우고 다시 메카로 돌아오며 이슬람교가 널리 퍼지게 됩니다.
7세기, 이슬람교가 창시된 후 아랍인들은 이슬람 제국(우마이야, 아바스 왕조)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장했습니다.
아나톨리아(현재 터키<튀르키예>)는
비잔티움 제국(동로마 제국)과 이슬람 세력 간의 주요 전쟁터가 되었으며,
11세기부터 이슬람 세력이 점차 이 지역으로 침투하기 시작했습니다.
▒ 셀주크 투르크 왕조의 이슬람의 뿌리 내리기
● 중앙아시아의 튀르크 부족이 이슬람화되어 서쪽으로 이동한 후
● 지금의 이란, 이라크, 시리아, 아나톨리아(터키의 일부)를 포함한
● 이란-중앙아시아와 중동 중심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 셀주크 투르크 왕조를 세웠으며 이슬람 세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 셀주크 투르크가 1071년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비잔티움(동로마 제국) 군을 대파하면서
아나톨리아( 터키<튀르키예>의 일부) 대부분을 장악했습니다.
● 이후 셀주크 투르크는 이슬람을 아나톨리아( 터키<튀르키예>의 일부)의 주요 종교로 전파하며,
기독교 인구를 점차 이슬람으로 개종시키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 그러나 셀주크 투르크 왕조는 13세기 초 몽골의 침입과 내부 분열로 세력이 약화하며 쇠퇴하였다.
▒ 오스만 투르크 제국 등장
● 13세기 말~14세기 초, 셀주크 투르크의 후예나 잔존 세력이
아나톨리아( 터키<튀르키예> 의 일부)에서 이슬람 문화를 기반으로
소아시아( 터키<튀르키예> )의 작은 도시들을 독립적적인 소규모 국가(베이릭)로 형성하며 성장함.
● 셀주크 투르크의 영토를 이어받아 확장하며,
결국 중동, 북아프리카, 아나톨리아와 발칸반도 등 중심으로 한 유럽-중동 거대한 제국을 형성.
●이후 콘스탄티노플(1453년 동로마 제국)을 멸망 시키고
콘스탄티노플(현재 터키의 이스탄불)에 더 강력하고 오래 지속된 오스만 제국을 세움
●이슬람 세계와 유럽 사이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으로 군림.
●르네상스, 십자군 원정, 근대화 등 유럽 역사와 밀접한 관계.
●17세기 이후 점진적으로 약화되었고, 1923년 터키 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완전히 소멸.
▒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현재 터키<튀르키예>의 이스탄불)을 기독교에서 이슬람교로 전환하다
● 오스만 제국은 이슬람교를 국가의 공식 종교로 채택하고,
● 기존의 기독교 유산들을 이슬람 문화로 전환했습니다.
● 대표적으로 가톨릭(기독교)의 성소피아 대성당은 모스크(이슬람 사원)로 바뀌었고,
이는 기독교에서 이슬람으로의 상징적 변화를 보여줍니다.
터키<튀르키예> 가 기독교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한 가장 크고 근본적 이유
▒ 사회적, 경제적 동기와 문화적 융합
●오스만 제국 통치하에서 이슬람교도로 개종하면 세금 면제와 같은 경제적 혜택
●이슬람을 믿지 않는 기독교인들은 추가 세금(지즈야)을 납부해야 했고, 군사나 행정직에서도 배제
● 오스만 제국은 종교적으로 관용적이었지만, 이슬람 문화와 법이 사회 전반에 뿌리내리면서
점진적인 동화가 이루어짐
※ 이러한 현실적 이유로 많은 기독교인이 이슬람으로 개종하게 되었습니다.
▒ 민족의 정체성의 변화
현대 터키<튀르키예>인과 동로마제국 시절 국민 구성원 차이
1. 민족적 차이
● 동로마 제국 : 그리스계, 아르메니아계, 원주민 계열
● 현재 터키<튀르키예>인 : 주로 투르크계 민족
(중앙 아시아→현재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지/ 원래 유목민으로 생활 )
※사우디아라비아, 예멘, 팔레스타인처럼 중동 지역의 아랍계 민족 사람들은 7세기 이후,
아랍 이슬람 제국의 팽창 과정에서 아나톨리아 접경 지역(현재 터키<튀르키예> 남동부)까지 침투했지만
동로마 제국의 중심지인 아나톨리아 중부와 서부에는 아랍계 사람들이 거의 없었으며,
아랍계 이주는 제한적이었습니다.
2. 언어적 변화
● 동로마 제국 : 그리스어가 공용어
● 현재 터키<튀르키예>인 : 투르크어
3. 종교적 변화
● 동로마 제국 : 기독교(그리스 정교)
● 현재 터키<튀르키예>인 : 이슬람교(터키인의 대다수)
4. 사회적 이슈와 흐름의 변화
●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아르메니아 학살(1915)과 그리스- 터키<튀르키예> 인구 교환(1923)으로 인해
터키<튀르키예>내 기독교 인구가 급격히 감소
● 터키<튀르키예>의 기독교인은 인구의 0.2%에 불과하며,
이들은 주로 아르메니아 정교회나 시리아 정교회를 따르는 소수 집단
터키<튀르키예>의 현재
. 터키<튀르키예>가 기독교 신앙 국가에서 이슬람교 국가로 변모한 이유는
11세기부터 이슬람이 전파되면서
군사적 정복, 경제적·사회적 요인, 민족적 정체성의 변화가 결합된 결과입니다.
기독교로 돌아갈 가능성은 역사적 갈등과 인구 변화, 그리고 현대의 종교적 현실로 인해 희박합니다.
하지만 기독교 유산은 여전히 터키<튀르키예>의 문화 속에서 중요한 역사적 자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슬람교에서도 예수님(이사)과 성모 마리아(마리암)를 중요한 예언자와 성모로 존경하기 때문에,
기독교와 관련된 성소피아 대성당(현재 아야소피아 모스크),카파도키아 동굴교회와 같은
기념비적인 건축물 유적에 대해 역사적 보물로 평가하며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터키<튀르키예>를 여행하실 때
터키<튀르키예>에 가톨릭(기독교)유적,유물이 많은 걸 보시고 의아해하셨다면
이제 이해가 잘 되시리라 생각이 되고
앞으로 터키<튀르키예> 여행을 하실 분들에게는
이런 역사를 안다면 터키<튀르키예> 여행이 몇 배로 흥미롭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포스팅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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